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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사전 3 - 리뷰 및 창작

내전과 학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호텔 르완다

by 잡학사전1 2020. 10. 20.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하였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내전을 주제로 하여 한 개인, 보통사람의 시선과 입장으로 세상과 시대를 바라보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호텔 르완다는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후보작이며, 2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작품성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또한  18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작곡상 수상, 3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외국작품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 역을 맡은 돈 치들은 이 영화로 2005년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재의 아이언맨 시리즈와 마블시리즈의 워머신으로 등장하는 영화배우이다. 


영화내에서는 투치족과 후투족을 등장시켜 내전양상을 그려낸다. 그 원인이 정확하게 어떤 사유인지는 누구도 “정답”이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천천히 생각해 보니 결국에 내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 다문화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다른 정신세계와 사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 반대로 정신과 사상에서 문화가 파생되는 것이 더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나는 ‘모든 세상은 온통 다른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몸소 체험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뿐...하지만 이런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입장고수가 세상과 사회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영화 중간에 제3자적 입장에 서 있는 종군기자들의 대화장면이 등장한다. 이 대화장면에서 기자들은 나란히 서 있는 ‘투치족’과 ‘후투족’을 바라보며 이들이 도대체 다른 것이 무엇이냐며 서로 묻는다.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시간의 정적을 느꼈다.

짧디 짧은 순간의 정적이었지만 찰나를 스치며 나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왜 같은 계통의 국민들끼리 과거의 구태의연한 종족이라는 가치에 얽매이는지 말이다. 심지어 르완다의 대통령까지도 살해를 당한다.

 

 





대화장면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잠시나마 대한민국의 6.25전쟁이 떠올랐다.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도 북측과 남

측이 달랐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잠시동안의 공간적 격리로 인한 사상과 생각의 변화?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통해 크나큰 상처를 입었던 당시 6.25 전쟁 참전군인의 모습들..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서로 다른 종족의 남편과 아내를 등장시켜 영화를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영화가 진행되는 시종일관 내전의 종족 한가운데 서 있는 그들을 더욱 측은하게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후투’와 ‘투치’는 강대국(선진국 혹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인권도 없는 흑인’정도로 치부되었던 현실이다. 평화와 전세계 인류의 번영을 꾀한다는 세계연합조직인 UN이 등장하지만, UN에서 파견된 다국적 평화유지군도 처음에는 African들의 인권을 무시한다.

그리고 내전이 일어나던, 수십만명이 죽거나 혹은 부상을 당해도, 현실속에는 그들의 실리적(중립적) 입장고수만이 있을 뿐이다. 내전간에도 서부유럽의 호텔재산을 침략하거나 손해시키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런 양상은 비단 서부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관계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의 양태를 바라보게 된다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Kophino라고 불리우는 한국인과 필리핀의 버려진 혼혈아동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코피노의 불편한 진실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아가다 보며 느낀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전의 양상은 결국 생각의 다양성에서 귀인한 것이고, 나아가 문화의 다양성으로 발전해서 문화의 전쟁, 결국엔 종족의 전쟁으로 귀착되게 되었다. Fiction이 반영된 역사적인 사건을 보게 되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것은 종교전쟁으로 불리우지만 그 근원은 결국 ’생각의 다름‘이었을 것이다.

이런 서로간의 입장의 차이는 결국 종교의 다문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엔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십자군전쟁이라는 결과로 귀착된 것이다. 이는 생각이 틀리다는 서로의 견해에서 조금 많이 벗어난 방법을 취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혹은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도 아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도 아니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이는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은 아주 독선적이다. 거기에는 원래 어떤 정답도 없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다양한 권리와 인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다양한 권리와 인권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끝에는 결국 다양한 권리와 인권의 존중, 즉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가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기에도 세계는 점점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미 세계는 글로벌화되었다


글로벌화 과정에는 많은 진통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현재진행형의 글로벌화는 일부문제만을 담고 있고, 이는 개선의 여지가 아직 충분하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지금처럼 한 국가안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국경선을 무시하고 그 안에 다양한 국가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오직 ‘존중’이라는 가치아래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 ‘존중의 가치’를 제대로 발현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더욱 더 “세계적인 세계”가 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고 느끼게 된 나의 최종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