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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사전 4 - 사회와 일상

치명자산 등산기행2 - 불교와 천주교가 공존하는 성지

by 잡학사전1 2020. 12. 22.


치명자산의 본래 이름은 승암산이다. 
치명자산이 된 유래는 천주교 순자들이 많이 묻히게 된 이유때문일 것이다. 



본래는 승암산 혹은 중바위산이라고 불리우며 이렇게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에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 

치명자산 아래에는 그 본래의 이름에 걸맞는 절인 승암사가 위치해 있다. 
산 아래에는 승암사가 위치해 있고, 산 중턱에는 동고사라는 절이 위치해 있다. 

동고사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비석과 여러 조각들의 모습.. 

동고사에안에는 그곳이 절 임을 알려주는 여러가지 건축물과 물건들이 즐비해 있다. 

동고사에 있는 타종의 모습과 동고사에 들어서면 보이는 건물들...



동고사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자비로운 석가모니 상이다. 


이 동고사와 승암사의 사이에는 천주교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고, 
동고사 위쪽으로도 천주교 순교자들의 무덤과 함께 성당이 있다.
 
문화와 종교의 자유적인 가치관과 다양성의 가치관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여
특정 생각에 치우쳐 올바르지 않게 생각하는, 특정 종교인의 시선으로 보면 참으로 이상한 모습일 것이다.

동고사의 바로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성당과 함께 순교자의 무덤이 있다.


성당으로 가는 길의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성당 본 건물과 화장실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약수터를 볼 수 있다. 



등산을 하며 지나가는 손님들이나,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듯 하다. 



성당 외관의 모습이다. 
성당 위쪽으로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위치해 있는 성지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곳을 방문하면 성지순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흔히들 우스갯 소리로 성지순례라는 말을 잘 쓰지만 
본질적인 성지순례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성지로 향하는 길에 위치해 있는 대나무 숲과 계단의 모습이다.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향하기 전 작은 대나무 숲을 볼 수 있는데 
그 대나무는 성지를 보호하는 보호수역할을 하니 꺽지 말라는 표시도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보호수 형식으로 심어놓은 대나무가 동고사의 앞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볼 때 종교라는 것의 궁극적인 본질은..... 
그 맥락이 거의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 본다. 




자신들의 신을 믿는 방법과 신념은 다를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이 말 한마디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 말과 비슷한 맥락의 표현들은 특정종교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순교자의 무덤을 지나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다 보면 바위를 깍아서 만든 것 같은 
다음과 같은 십자가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성지를 비추는 빛과 같은 효과를 내보려고 사진을 한번 찍어 보았다. 




정상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성직자의 묘도 보이고, 내려오면 옹기가마(경당)과 기도실이 보인다. 





그 옆에는 한자로 재옥(재옥)이라고 적혀 있는 감옥같은 건물도 보인다. 


아마도 재옥이라는 정확한 의미를 알려면 천주교를 조금 더 깊이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기도실과 옹기가마인 경당의 모습이다. 치명자산 성지로 가는 주차장 쪽에 위치해 있는 것들이다.

 

 

 

 동고사를 통해서 바라 본 전주시내의 전경이다. 저 멀리 쪽으로는 완주까지도 보인다.



 

위와 같이 본 것처럼 승암산 혹은 치명자산이라는 하나의 장소에 불교와 천주교가 공존하고 있따.  
(우리나라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서로간의 종교를 무척이나 
배척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문제가 되곤 했다....)

나는 어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꽤 오랫동안 교회도 다녀봤고, 잠깐이지만 절도 가 보았고, 
군대에 있을때는 성당도 가 보았다. (-_-)

치명자산을 방문하고 나니,, 
하나의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다른 또 하나의 종교를 배척하며 무시하는 모습은 지성인의 모습도 아닐 것이고, 
올바른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력하게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종교인들이 치명자산과 같이 모두를 아우르고 품을 수 있는 관용과, 
공존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