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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사전 2 - 교육

학교가 달라지고 있을까

by 잡학사전1 2020. 9. 26.

1.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에 대한 단상.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  학교는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하여 달라질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함께 경험한 세대이다. 내가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갈 무렵에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하여 초등학교라는 명칭으로 바꾼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라는 말이 곧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나 어찌 되었든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적인 잔재물들을 없애는 것은 좋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이라는 단어는 아주 좋은 단어이다. 하지만 학문을 처음으로 배운다는 뜻을 가진 "초등학교"라는 말로 바꾼 것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일재강점기의 잔재물을 없애며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잡는 것이 자국의 민족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들이 겪었던 국민학교라는 것이 일제시대 잔재물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과거 국군주의 시절 일본의 쓰레기같은 정책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교육계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 시절 용어 청산이 필요하다. 

일제잔재용어청산 작업 중에는 초등학교 이름을 바꾸는 것도 있다. 

요즘에는 북초등학교, 남초등학교 등의 용어도 바꾸려고 시도하는 등 학교의 많은 부분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과거 국민학교는 군대의 강제 징집소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의 운동장은 군대의 연병장을 닮아 있고,

학교의 조회대는 군대의 사열대를 닮아 있고, 학교 건물 역시도 폐쇄적이고 감시가 가능한 구조인 일자형 복도식으로 지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군대의 막사 역시도 일자식 복도건물 구조로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감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어떤가? 강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진 직선에서 벗어나, 완만한 곡선의 사용을 통해 건물을 만드는 학교들이 많으며, 일자 복도형 건물이 아닌 타원형의 구조로, 창문이나, 문이 뻥 하고 뚫려 있기도 하다.  

이런 직선형, 단선형 구조의 건물의 탈피는 과거 교사는 더 이상 

감시자, 관리자의 역할이 아님을 학교 건축 설계에서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런 구조를 가진 학교는 전주시 외곽에 있는 완주의 삼우초등학교가 있다. 

완주의 삼우초등학교는 학교가 성냥갑모양을 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나의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학교에 가게 되면 으레 정해진 시간이 되면 조회를 해야 했다. 

조회를 위해서 최소 20~30분전에 나가 힘들게도 2~30여분간 정렬하는 연습을 하거나 국민체조를 했던 

국민학교의 기억은 암담하기만 하다. 당시 국민체조는 국군 도수체조와 상당부분 흡사했다. 

 

조회를 하기 전에 애국가를 제창하고, 국민의례를 외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회시간이 되면 교장선생님은 딱딱하고 각진 사열대 위에서 최소 30여분에서 심하면 1시간 가량을 

훈화말씀을 하곤 했다. 

 

우리들은 당시 그것이 당연한 권위인 줄 알고, 아무런 건의같은 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뭐랄까 소통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수업을 받다가도 반에서 누군가가 떠들면 "몇학년 몇반은 하나"라는 개념으로 

으레 얼차려라고하는  단체기합이나 단체로 매를 맞곤 했다. 

 


과거 국민학교의 모습..

아직도 기억나는 단체기합중의 하나가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이다. 단체로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의자를 들고 서 있는 것이다. 팔만 들고 있는 것도 힘이 드는데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의자를 들고 있을라치면 그것만한 고통이 없었던 듯 하다.   

 

지금 누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단체기합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지금의 학교에서는 물론 과거와 다르게 지나친 개인주의를 인정한 나머지, 단체의식이나 단결력등을 많이 볼 수 없는 단점이 생기곤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다.   

 

지나온 내가 경험한 많은 것들이 군대와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난 군대에서 4년 3개월을 있다왔다. 간부로 전역을 했기 때문에 내가 크고 나서도 그렇게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과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까지도 나의 생각은 그런 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2. 달라지는 시대와 달라지는 학교.

 

후에 교육대학교를 입학하고 공부를 하면서 안 것이지만, 학교가 달라지려는 시도는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 많이 있었다. 그런 사례들이 혁신학교이고, 현재 전국에는 많은 혁신학교들이 있다. 물론 인가되지 않은 학교도 있고, 인가된 학교도 있어서 개인적인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이것이 긍정적인 학교변태의 사례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겪었던 1990년대 초중반의 학교와 2020년대의 학교는 조금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나는 더욱이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학교를 다녔고, 실습을 나갔던 학교는 시에 위치한 학교였기 때문인지

내가 경험했던 국민(초등)학교와 지금의 초등학교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단지 교사가 관리자 감시자의 역할이 아주 크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은  눈에 띄는 것은 교실 내부의 외형적인 부분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사물함의 위치라든지, 환경미화하는 곳이나 방식등이다. 

 

그리고 진짜 내부적으로는 교실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과거의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조금은 자유스러운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다른 말로 그런 부분을 예의가 조금씩 없어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예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고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과거와 지금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여전히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권위에 호소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에서 교사와 학생의 단절이 일어나게 된다. 과거의 권위지향적인 태도...

권위와 카리스마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역량으로 만드는 것이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구태의연한 과거의 부분 역시도 군대의 계급문화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권위와 카리스마라는 것은 진실된 삶의 태도와 성실한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에 의지하는 리더십은 이제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현대의 리더십은 소통의 리더십과 헌신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나고 시대는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상호작용이다. 

그것이 곧 "소통"이라는 것이다. 소통은 곧 헌신을 불러 일으킨다. 

어른이 되었든 아이가 되었든 내가 한 사람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존경과 경외의 대상에서 존중이라는....어찌보면 한차원 낮은 단계의 관계가 되어버렸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다. 이런 역학 관계속에서 2020년 학교(교실)는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는 건물의 변화 뿐만 아니라, 수업방식의 변화도 가져오는 시도를 한다. 40분 수업을 하는 동안 무조건 강의식 주입식을 주지하던 교사들은 80분 블럭형 수업을 시도하기도 하며, 강의식 주입식이 아닌 상호작용의 소통의 수업을 시도한다. 수업시간의 변화는 곧 학생의 참여를 가져오며, 학생의 참여는 의견교환과 학생스스로의 주체적 의사결정능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함양시켜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혁신학교가 아니더라도 개정된 교육과정에는 교사에게 80분 블럭형 수업의 재량권을 주며, 이런 수업을 권장하기도 한다. (외국에는 많은 혁신학교가 이미 수십년전부터 있었다. 독일의 발도르프학교(Waldorf school)나, 영국의 서머힐(Summer Hill)과 같은 학교들이다.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혁신학교 분당의 이우초등학교

 

 

그렇게 학교는 모든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초등학교로 1주일에 한번씩 영어를 가르치러 나가곤 했다. 시내의 학교가 아닌 시골의 학교이다. 

TALK라는 영어교육 프로그램인데 시의 권역이 아닌 도의 권역으로 가서 시골의 학교에서 원어민과 함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갈때마다 느꼈던 것이지만 학교는 정말로 참 많이도 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의 관점이 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3. 하지만 가끔은 추억하고 싶은 국민학교의 모습들.

 

학교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도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당연하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아서 시대는 점점 디지털화되어가는 느낌이고, 개인이 웬만한 모든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은 그런 것들을 연유하여 어린 시절부터 개인주의를 더욱 극심하게 하고 있다.

물론 위에도 말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싶다.( 존중의 관계는 아직도 학교에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교과서

 

 

  초등학교 교과서 

 

가끔은  칼라풀한 요즘의 초등학교 교과서와는 다르게 원래부터 흑백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더욱 빛바래지는 국민학교 교과서가 가끔은 보고싶기도 하다. 

 

 

가끔은 나무를 태우던 깡통난로가 그립기도 하다..난로에 아침에 일찍 와서 불을 붙이기 위해 우유곽과 신문지를 태워

서 난로안에 넣던 연기를 잔뜩 먹던 기억도 나곤 한다. 

가끔은 난로 위에 올려서 먹던 놋쇠그릇 사각도시락이 생각나기도 한다.

 

 

출처: 다음카페

 

 나의 어머니도 꽤나 시골사람이고 옛날사람이었기 때문에 놋쇠사각도시락에 볶음김치를 넣어주고,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서 도시락을 싸 주시곤 했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나의 사각도시락위에 또 다른 사각 도시락이 몇개씩  놓이기도 했었다. 

가끔은 나의 담임 선생님이 쳐 주시던 흥겨운 풍금 소리가 기억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