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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 사전 4 - 사회와 일상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by 잡학사전1 2020. 9. 16.

전주는 사실 하루만에 모든곳을 탐방하기에는 조금 크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한옥마을 옆에 위치한
리베라호텔이라고 하는 곳은 하루,이틀을 묵으며 전주를 탐방하기 위한 사람들로 늘상 만원을 이룹니다.
전주가 유명한 것은 비단 비빔밥만이 아닙니다. 비빔밥 이외에도 콩나물국밥과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성균관스캔들의 촬영장소...이기도 합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서울의 모습과 구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규모는 약간 작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주에 와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전주는 사실 조선왕조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전주이씨'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겠죠

전주의 경기전의 모습입니다. 전주는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많이 손꼽는 곳 중 하나입니다.(특히 사극 몇년전에 종영된 바람의 화원이나, 용의 눈물, 왕과비, 명성황후를 찍은 곳입니다.)




내부에는 언제나 푸르름을 자랑하는 대나무숲이 조그맣게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왕조 8대의 대왕인 예종대왕의 태실과 기념비입니다.


 

경기전 옆에 위치한 전동성당의 모습입니다. 밤에 찍어서 사진이 상당히 흔들려 버렸네요

박신양과 전도연이 출연했던 조금은 옛날영화가 되어버린 영화 '약속'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전주의 전동성당의 사진입니다. 사진이 실물보다 훨씬 못하네요 실물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밤에 보아도 낮에 보아도 사진보단 낫겠네요..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경기전과 다른 한쪽에는 전동성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전동성당 더보기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유항검등 호남 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당한 순교한 자리였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성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대구대목구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이후로도 계속 전주 지역의 로마 가톨릭의 성지 중 하나로써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81년 9월 25일사적 제 288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성당에서 몇 차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임 신부 및 보좌신부가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1988년에는 원인 불명의 화재가 일어나 성당의 일부가 전소되는 등의 일도 겪었다.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며,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는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올렸으며, 성당 내부의 석조 기둥에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은 화강암을 주춧돌로 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성당을 착공한 1908년에는 대한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본 제국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었기 때문에, 성당의 주춧돌은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하였다. 또한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 또한 전주읍성의 성벽에서 나온 흙을 이용하여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직접 구워 사용하였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각각 익산시 황등면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다.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1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함께 있는 사제관은 지방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어느 지역을 가던지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있을텐데요 전주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가의 한 사람으로
장편소설 '혼불'의 저자인, 최명희 소설가를 기리기 위해 '최명희 문학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최명희 문학관에서 그림을 그려놓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지도


 

최명희 길도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최명희길'이란 명칭이 있고 아래 사진이 바로 최명희 길입니다.



이렇게 최명희길이 있는 이유는 전주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바로 최명희 작가의 생가터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생가가 위치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가터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저렇게 생가터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멘트가 아닌 흙과 돌로 만들어진 한옥마을의 돌담길

 

 

 

          사극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한옥대문

 

                     오목대의 모습

 

 

이성계가 이 자리에서 불렀다는 대풍가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자라면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고려 우왕  6년에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던 길에 이곳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 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합니다.


오목대 정상에 왜구를 무찌르던 전승을 기념하는 고종의 기념비입니다.




그리고 다음 방문지는 향교 근처에 위치한  양사재라고 하는 곳입니다.

 


양사재는 선비를 기르는 집이란 뜻으로 조그마한 집한채로 이루어져 있는 곳입니다.
향교의 부속건물로 유생들을 교육했던 공간입니다.
이 양사재에는 서당공부를 마친 재능있는 청소년이 모여 생원, 진사공부를 하던 곳이며
진사시험에 합격하면 양사재에서 합격사실을 알리는 부표(附表)를 해야 비로소 인정될 정도로
선비들에겐 매우 영향력있는 교육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오목대 남쪽 기슭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양사재...

양사재 백일장을 한다고 하여 뭐가 작성해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24일이 다 되어버렸네요..

양사재에 관해 설명을 해주던 양사재 관장님


네덕 네탓이라는 인상적인 말이 써 있는 양사재에 담긴 현판의 모습

전주향교를 가는 중에 특이한 간판의 가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2국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였는데요..
잘 안 보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전화번호가 2-6421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가게에 전화를 해보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아직도 2국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간판만 그렇게 달아놓은 것인지..
성균관스캔들의 일정은 여기 가게 주인 할아버지께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하네요 ㅋㅋㅋㅋ

 그럼 요즘 화제의 전주향교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박유천이 주인공을 맡아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성균관스캔들의 촬영장소인 전주향교는 역시나 여성들의 방문이 많았습니다.


밑의 사진은 위 입구와 다른쪽의 옆에 위치한 들어가는 문




내부를 보게 되면 고목나무들이 몇그루 있습니다. 모두다 350년은 족히 넘은 나무들이고 나무 곳곳에 오래되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멘트로 썩은 부분을 채워넣은 흔적이 보입니다. 미관상 좋지는 않지만 나무의 보존을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유독 향교 내부에는 은행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박민영과 박유천이 올라타고 놀던 장면이 나오던 은행나무들일텐데요..
향교에 은행나무가 많이 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들지 않는 성질이 있는데요. 이런 기질을
이어받아 유생들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 고인물처럼 썩어가는 태도가 없이
공부에 꾸준하게 매진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명륜당은 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명륜당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성균관의 문묘 북쪽에 설치된 유생들의 강학(講學) 장소입니다. 저도 전주향교를 처음 방문해보는지라 원래 명륜당이 이곳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네요..

지금은 내부에 이렇게 초등학교 교실처럼 작은 책상과 의자를 비치해놓고 실제로 많은 프로그램들을 편성하여 
아이들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박유천으로 유명해진 성균관 스캔들로 인해서 유명해진 전주향교에는 저렇게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찾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향교를 관리하시는 분께 핸드폰을 맡기고 갈테니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좀 해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관리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거절하고 학생들은 계속해서 부탁하고 5분여간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전주는 천천히 걸으며 탐방하기에 알맞은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하루만에 모든것을 탐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도시라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전주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이도 있습니다. 전주 비빔밥축제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문화축제, 공연등이 상당히 많은 도시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이곳은 전주입니다.